용두산을 올라 부산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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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용두산을 올라 부산포를 보다 · 8시간 · 210.51km
부산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오랜 시간동안 교류해 온 지역이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해주었고 무역을 통해 생활필수품을 조달해주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우리 영토에 왜관을 두고 일본인 마을을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왜관을 만드는 일에 우리나라 백성들이 부역을 하고 많은 돈을 들이기까지 했다. 이를 테면 조선시대의 햇볕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모습이 일부 남아있는 용두산공원 일대를 둘러보며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며 변화된 지형의 모습을 확인해보자. 부산의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부산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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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수옥과 초량왜관 터 (경상) — 초량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가 머물던 곳이다. 당시에는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쪽이 가장먼저 시가지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배를 대는 선착장이 가깝기
- 광복로 (경상) — 현재 사람들과 차량이 내왕하는 광복로 도로는 원래 하천이었다. 복개되기 전,송현천(松峴川 솔재내)이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1600년대까지는,
- 용두산공원 (경상) — 용두산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용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콘삐라 신사와 벤사이텐신사가 있어 일본인들의 성역으로 조성되었지만 해방후 신사는 헐리
- 대각사 (경상) — 일본의 명치유신 9년에 동본원사 부산별원이라는 최초의 일본사찰이 세워짐, 개화파의 핵심 유대치(한의사)가 이동인(봉은사스님)의 개화정책을 자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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